무조건 시장만 믿으라는 이상한 오해
자유 경제 제도 안에서 각자의 이기심을 추구하면 시장 가격이 자연히 최적으로 조율된다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은 합리적이다. 시장경제 시스템의 강점은 경제 활동을 하는 개인들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경제적 선택을 한다는 점에 있다. 아무래도 남의 돈을 굴릴 때보다 자기 돈을 굴릴 때 훨씬 책임감 있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성과 또한 개인의 능력과 따라 보상받기 때문에 개인이 자기계발에 힘쓸 동기부여가 제공될 뿐 아니라 개인들의 이러한 경쟁을 통해 사회가 전반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상당히 이상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이 개념을 통해 고전 경제학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이 개념은 종종 정치적으로 오용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손’ 개념을 단순히 자유 방임주의 경제와 경쟁에서 오는 모든 종류의 불평등을 긍정하는 것으로 곡해하면서 정부는 시장에 절대 개입하지 말라는 의견들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원칙은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구매하는 ‘청렴한 상태’일 때를 전제한다.
그렇기에 시장경제의 원칙을 들먹이며 무조건적인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애덤 스미스에 대한 모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누가 그의 말을 곡해하는가…
한국경제에 찾아온 불청객, 시장 자본주의
한국 경제에 IMF 외환위기는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대기업의 연쇄 부도 여파로 기존의 성공신화들을 뒷받침하던 결과들이 무너졌고, 다수의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의 일상이 뒤집어지던 시기였다.
하루 만에 수십 개의 기업이 사라지던 시기
이때 IMF가 제안한 시장 자본주의는 효율이란 이름으로 비정규직의 증가와 이에 따른 고용불안을 가져왔다. 이제 개인들의 삶은 장기적인 계획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와중에 충격을 버틸 수 있던 경제적 강자들은 약자가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쓸어 담는 상황이 벌어졌다.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일부 금융이자 고소득자들 사이에서 IMF 체제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대로’, ‘IMF여, 영원하라’라는 구호가 유행한다고 해서 서민들을 씁쓸하게 했다.
- 「IMF가 만들어낸 자조어… 새 풍속」, 한국일보, 1998년 11월 보도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났다. 한국 사회는 분명한 양적인 성장에도 우울과 미래에 대한 이유 모를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특히 ‘흙수저’ 담론으로 대표되는 양극화 구조는 지금까지의 경제 성장을 이끌던 성장동력마저 무력화시키면서 경제 자체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침체, 양극화, 대량실업 등 시장 자본주의에 누적된 불만은 국가주도성장이나 무한경쟁 패러다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 “경제가 자기조정 능력을 갖추고 굴러간다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경제 인류학자 칼 폴라니의 말을 비롯, 다양한 대안을 찾는 시도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고
사람 사는 경제, 사회적 경제
그 중 ‘사회적 경제’는 강력하게 떠오르고 있는 대안 중 하나다. 1800년대 초 유럽과 미국에서 등장한 이 개념은 자본보다 인간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을 묻는다면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사회적 가치’를 최고의 목표로 놓는다는 것에 있겠다. 이는 기존 자본주의 구조가 ‘이윤의 극대화’만을 유일한 합리성이자 금과옥조로 여기며 환경문제, 인권 등의 ‘사회적 가치’가 파괴되어 가는 것을 구조적으로 방치해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일이 없도록
이런 이유로 사회적 경제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회적 경제는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공동이익, 자발적 협력과 연대 등의 가치를 먼저 고려하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 조직을 중심으로 한 대안적 지역 경제 시스템이다. 지역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공동체 및 지역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는 방식이다.
허황된 이론이 아니다. EU의 경우 사회적 경제의 영역이 GDP의 약 10%를 담당하고 있으며, 캐나다 퀘벡주는 2000개가 넘는 사회적기업에서 6만 명이 근무하고 있다. 1990년대 초 14%에 달했던 실업률에 대하여 시장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적 경제 관점에서 대안을 찾은 긍정적인 결과다.
캐나다의 ‘인서테크’. 중고 컴퓨터를 수리해 재생 컴퓨터로 되파는 사업을 한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는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을 기점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아직 막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이번 정부는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공약으로 걸고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한다. 일자리 수석실 산하에 ‘사회적경제비서관’ 자리를 만드는 한편, 기획재정부에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TF까지 편성하는 등 사회적 경제 실현에 강력한 의지를 보인다.
단순히 유행에 따르자는 것은 아니다. 기재부는 2015년 통계를 근거로 사회적 경제를 지향하는 협동조합이 전체 산업 평균에 비해 약 3배 정도 취업유발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일회적인 정책적 시도가 아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대신할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으로 기대가 모이는 분위기다.
사회적 경제는 기존의 시장경제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협력하는 세상을 위하여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에 주목해 다양한 지역에서도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행보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강원도의 경우 특히 산간지형이 많아 타 지역에 비해 기초 인프라나 인구가 적다는 특징이 있다.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지역의 사회적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을 지원하고 각종 교육사업, 정책개발, 판로지원, 사회적기업가 육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극심한 경쟁에 따른 인간소외를 방지하고 공동체가 협력하는 인간중심의 가치를 지향하는 대표적 사례로는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가 있다.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 지역 폐교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윤요왕 대표가 처음 센터를 만들기로 결심했던 당시 인근 송화초등학교의 입학생은 1명뿐이었다. 그는 농촌 지역 폐교문제가 지역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학생이 10명 이하가 되어 폐교되고 나면 지역에 사람이 새로 들어오지 않게 되리라는 것. 고민 끝에 ‘도시 아이들을 유학생으로 받아 보자’는 생각에 닿았다.
그 결과가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숨통을 틘다는 의미의 ‘숨통학교’다. 이 농촌유학 콘셉트의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을 뿐 아니라 지역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도시 아이들이 홈스테이 형식으로 농가에 머물며 지역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 이후 귀농을 결심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외에도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다채로운 사회적 경제 기업을 꾸준히 육성하고 있다. 경력단절 여성, 청년 구직 지원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실업 문제에 기여하는 ‘강원문화발전소(2018년도 청년참여형 마을기업 선정’)나 농촌체험 및 농산물 직거래와 같은 도농 교류 활성화 프로그램에 힘쓰는 ‘예밀포도팜스테이영농조합법인(2018년도 우수 마을기업 선정)’ 등이 대표적 지원 사례다.
협동, 상생, 그리고 사람 중심.
경쟁도 결국 함께 잘 살자고 하는 것인데
경쟁은 경제 전반의 수준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으로 만든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조가 심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쟁 이전에, 그 경쟁 질서에서 잠시 뒤처진 이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준비되어있는가가 중요하다. 만약 아니라면 한 번 넘어진 패자가 영영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지역 공동체가 거의 사라져버린 요즘 세상에는 더더욱 치명적이다.
결국 ‘누구를 위한 경쟁인가’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사회적 경제’가 시장자유경제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경험한 숱한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유효한 해답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다. 도시 집중화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그 중요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도시화와 이로 인한 불균형 성장이 누적되었다.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도농 간 격차가 점차 벌어진 결과 도시는 과밀화를, 지역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그저 잘 살기 위해 열심히 경쟁해 왔을 뿐인데 끝내 모두가 불행해져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의 주체들은 지역의 현안을 주민들 스스로 해결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방점을 둔다. 이를테면 나 하나만을 위한 각자도생의 생존경쟁이 아니라 지역 전체를 위한 사람 중심의, 협동과 상생의 경쟁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동체의 단단한 협력(단순히 돈으로는 살 수 없는!)은 지역 활성화는 물론 도시와 지역의 가교 역할을 하며 상생을 넘어 동반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본을 중심으로 한 성장 동력이 수명을 다했다고 평가받는 지금,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를 비롯해 사회적 미션에 도전하는 사회적 경제의 성장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 확보와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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